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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씨의 의자- 노인경 글, 그림 본문

그림책

곰씨의 의자- 노인경 글, 그림

그래나무 2019. 7. 10. 00:05

권장 연령: 4세~

노인경 작가가 쓰고 그린 <곰씨의 의자>이다.

<곰씨의 의자>

 

이 책의 주인공은 곰씨이다. 햇살이 눈부신 어느 날 곰씨는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면서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다 보면 곰씨는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혼자만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곰씨 곁으로 낯선 토끼가 지나가게 된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는 토끼는 세계를 여행하는 탐험가이다. 곰씨는 몹시 지쳐 보이는 그에게 자신의 의자에 잠시 쉬고 가라고 권한다. 곰씨에게 쉼을 제공받은 토끼는 그동안 자기가 경험한 세계의 진기한 이야기들을 한 아름 풀어놓는다. 의자에서의 삶이 익숙한 곰에게 토끼의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곰씨와 탐험가 토끼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때 공룡만 한 애벌레가 쫓아오는데 세상에, 얼마나 빠른지······."

토끼는 자신이 겪은 모험담을 들려주었고 "오호호, 정말 신기한 이야기로군요." 곰씨는 처음 듣는 유쾌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무척 슬퍼 보이는 무용가 토끼가 그곳을 지나가게 되고 탐험가 토끼는 그 무용가 토끼를 이해하고 위로해주다가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곰씨도 그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해 준다. 두 토끼 부부에게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쉬지 않고 계속 태어났고 그 많은 아이들과 토끼 부부에게 점령당한 의자에서 곰씨는 더 이상 예전처럼 차를 즐길 수도, 음악을 감상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게 된다.

아이들은 계속계속 쉬지 않고 태어났어요. "잠시만요, 저······자리가······그게 아니고 책이······."

 

늘 즐거워 보이는 토끼 가족들에 비해 곰씨는 점점 불행해지고, 곰씨는 토끼들에게 무언가 말을 해야 할 때라고 느끼지만 말은 빙빙 돌아 이상한 문장이 되고 결국 해야 할 말은 나오지 않게 된다.

곰씨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꺼내지 못했습니다. "음음, 어떡하지?"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할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는 곰의 몸짓이 여러 개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그 위를 붉은색 선으로 휘갈겨져 있다. 이 붉은색 선을 보는 순간! 우리는 곰의 마음, 그리고 우리도 아는 그 마음이 떠오른다. 정당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꺼내야 하나 고민하는 그 마음. 나의 공간, 나의 마음을 침해받았을 때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내가 점점 없어져 갈 때 이 상황을 멈추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멈춰야 할지 고민하는 그 마음 말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민을 한다. "싫다"라고 말하면 간단한 일이겠지만, 토끼 가족들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에게 내게 없던 매력을 느낀 순간도 있고 즐거웠던 순간도 있었다. 이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고민하는 마음의 가닥이 얼기설기 얽혀 꼬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꼬인 가닥은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라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평소의 내가 아닌 것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면 스스로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다'에 이르게 된다.

"말도 안 돼! 날보고 더 이상 어쩌란 말이야.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난 세상에 다시없는 친절한 곰이라고."

 

세상에 다시없는 친절한 곰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의 불편함 때문에 고민이 많은 어른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자. 

 

누구나 자기를 지켜야 하는 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그 선은 지켜지지 않을 때가 수두룩하다.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다 보면 분명 '싫다'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내 마음은 지키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어느새 '나 같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이 정도 배려했는데 왜 몰라주는 거지?', '내가 도대체 어디까지 참아야 하는 거야?', '이 정도 했으면 알아서 눈치채야 하는 거 아냐?',  '내가 그동안 참은 건 어디 가고 왜 나만 나쁜 사람이 되는 거야?' 이런 불평의 말만 내뱉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 마음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을까? 내 마음이 없어 사라지면 다른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세상에 다시없는 친절한 곰' 그런 건 없다. 세상에 다시없는 친절한 사람이 되어서 주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지 말자. 내 마음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누굴 지키겠는가. 꾹꾹 참다 결국 화를 토해내는 방법 말고 평소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싫다'라는 말을 했을 때 받아 줄 수 없는 인간관계라면 그 인연은 흘러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 붙잡지 말고.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작가가 왜 이 책을 썼겠는가. 어려우니까 쓴거다.

 

"깊어지는 관계 속에서 간혹 '싫어'라는 말도,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라는 말도 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 볼 기회가 없었고,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저는 어렵습니다." - 노인경

 

노인경 작가도 어렵다고 한다. 다행이다. 나만 어려운 게 아니라서.

 

제목: 곰씨의 의자

작가: 노인경

출판사: 문학동네

발매: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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