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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여름휴가- 안녕달 글·그림/창비 본문

그림책

할머니의 여름휴가- 안녕달 글·그림/창비

그래나무 2019. 8. 1. 16:42

권장 연령: 4세~

안녕달 작가가 쓰고 그린 <할머니의 여름휴가>이다. 작가의 첫 번째 창작 그림책 <수박 수영장>에 이어 두 번째 창작 그림책이다.

<할머니의 여름휴가> 책표지

혼자 사시는 할머니의 집에 며느리와 손자가 찾아왔다. 며느리가 할머니를 위해 한아름 가져온 음식들을 냉장고에 넣어 두는 동안 손자는 바다에 다녀온 이야기를 한다. 할머니랑 또 바다에 가고 싶지만 할머니는 이제는 힘들어서 바다에 갈 수 없다고 하자 손자는 바다에서 가져온 소라를 할머니 귀에 대고 바닷소리를 들려준다. 

바다의 느낌을 조금이라도 전해주고 싶은 손자의 상기된 표정과 그런 손자의 마음과 바다를 느껴보려는 눈을 감은 할머니의 표정이 아름답다.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 게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지, 그리고 모래성은 잘 있는지 손자는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머니는 "그래, 들리는구나.", "그래 다 잘 있구나." 하고 조곤조곤 맞장구를 쳐준다.

할머니 귀에 소라를 대고 바닷소리를 들려 주는 손자.

"들려요, 할머니?"

 

며느리와 손자가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할머니에게 드리려고 물건들을 담아왔던 봉지에는 할머니가 집에서 키우는 배추와 파가 들어가 있다. 할머니들은 누구든 절대 빈손으로 보내지 않는다.

손자는 더울 때 들으면 시원해질 거라며 할머니에게 바닷가에서 주워온 소라를 선물로 드리고 간다.

할머니는 강아지와 다시 집에 홀로 남고 며느리와 손자는 집으로 돌아간다. 며느리와 손자가 내려가는 길 너머로 주변 풍경이 보인다. 할머니는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경사가 심한 동네 꼭대기쯤에 사시는 것 같다. 할머니 동네 맞은편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안녕달 작가는 관념적인 동네의 그림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실제 동시대의 풍경을 세심하게 그린다. 할머니 집에 세간살이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로 할머니가 살고 있는 방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그림 구석구석을 살피다 보면 시간 가는지 모르게 재미있다.

며느리와 손자는 돌아가고 다시 홀로 남아 강아지와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할머니.

손자가 두고 간 소라에서 게 한 마리가 나왔다 들어가고 할머니가 키우는 강아지 메리는 그 게를 쫓다 소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온 메리의 몸에서 할머니는 바다 냄새를 맡는다.

할머니는 예전에 입던 수영복을 서랍장에서 찾아 꺼내어 입고 양산, 돗자리, 수박 반쪽을 챙겨 메리와 함께 소라 안으로 들어간다. 

옛날에 입었던 수영복을 꺼내 입고 양산, 돗자리, 수박 한쪽을 챙겨 소라 안으로 들어가는 할머니와 강아지 메리.

옛날 수영복, 커다란 양산, 가벼운 돗자리, 수박 반쪽을 들고, 할머니와 메리는 소라 안으로 들어갔어요.

 

소라에서 빠져나오니 완전히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표현된 바다와 모래사장은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며 삶의 긴장들을 한순간에 풀게 해 준다. 좁은 공간에 세간살이들로 차 있는 할머니의 집과, 소라를 통과하면서 마주하는 광활한 바다는 대조를 이루며 극적으로 표현된다. 파도 소리가 들리고 바닷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

소라 밖으로 나오자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 풍경.

할머니와 강아지 메리는 갈매기들과 수박도 나눠먹고, 바다표범과 뒹굴거리며 바다 햇볕에 살도 태운다. 할머니와 동물들의 동글동글한 몸이 뒹굴뒹굴거리는 게 참 귀엽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오후에 집 안에만 있던 할머니는 바다에서 햇볕도 맘껏 보고 시원한 바닷바람도 느낀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강아지 메리는 곁을 지나가던 소라게를 따라가게 되고 할머니는 그 메리의 뒤를 따라가다가 기념품 가게를 발견한다. 가게 안에는 바다 냄새 방향제, 바닷모래 놀이, 바다여행 소라, 바다 진주, 움직이는 액자, 갈매기 모빌 등 각종 다양한 종류의 기념품들이 있다. 그림책에 묘사된 기념품 가게의 물건들을 보며 다시 한번 작가의 위트와 세심함에 놀라게 된다. 이것저것 구경하던 할머니는 바닷바람 스위치를 고르고 메리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바다 표볌과 뒹굴거리며 바다 햇볕에 살을 태우는 할머니와 메리.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와 메리는 몸을 씻는다. 그리고 기념품 가게에서 사 온 바닷바람 스위치를 꺼내어 고장 난 선풍기 강풍 버튼스위치를 빼내고 바닷바람 스위치로 바꿔 끼워 넣는다. 작동하지 않았던 강풍 바람이 시원하게 돌아간다. 할머니와 메리는 거실에서 바닷바람처럼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쐰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와 메리는 몸을 씻고, 기념품 가게에서 사온 바닷바람 스위치를 고장 난 선풍기에 끼워 넣는다.

할머니는 바닷바람 스위치를 고장 난 선풍기에 끼웠습니다.

 

<할머니의 여름휴가>를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는 몇 해 전에 얻은 병으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실 수 없어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집에서만 보내신다. 엄마는 요즘 어린 시절 마룻바닥에 누워서 듣던 빗소리가 자주 생각난다고 하셨다. 더위에 한껏 쏟아지는 창밖에 비를 보면서 그때를 떠올리신 듯하다. 몸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엄마의 머릿속은 가족과 함께 갔던 여행도 떠올리고 몸이 온전하던 시절 자유롭게 다닐 수 있던 공간들을 상상하는 것으로 시간을 할애하시는 듯했다.

엄마의 모습은 이제 누가 봐도 할머니가 되었지만 엄마의 마음은 마룻바닥에 누워 빗소리를 듣던 그 어린아이이면서, 우리들의 손을 잡고 여름마다 바다에 갔던 젊은 여인의 모습 그대로다. 여름 휴가지 바닷속에서 넘실대는 파도가 무서워 엄마의 튜브와 손을 꼭 붙들던 때가 있었다. 이제 엄마는 한 발자국 조차도 누군가를 의지하지 않으면 내딛으실 수 없게 되었지만, 엄마의 마음은 그대로이다.

<할머니의 여름휴가>에서 할머니도 이제는 멀리 여름휴가를 떠날 수 없지만 마음은 여름의 바다와 젊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시끌벅적한 휴가지로 떠나는 계절 이 여름에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여름휴가를 선물하는 작가의 마음이 참 고맙다.

 

제목: 할머니의 여름휴가

작가: 안녕달

출판사: 창비

발매: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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