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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대장 존- 존 버닝햄 글, 그림 본문

그림책

지각대장 존- 존 버닝햄 글, 그림

그래나무 2019. 7. 28. 00:01

권장 연령: 6세~

존 버닝햄이 쓰고 그린 <지각대장 존>이다.

 

주인공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이른 아침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선다. 그런데 학교 가는 길에 하수구에서 악어 한 마리가 튀어나와 존의 책가방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지각대장 존> 악어에게 책가방을 물린 존

한참을 가는데 하수구에서 악어 한 마리가 불쑥 나와 책가방을 덥석 물었습니다. 존은 책가방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지만 악어는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존은 악어와 힘겨루기를 하다 할 수 없이 악어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끼고 있던 장갑 하나를 휙 던진 후에야 책가방을 되찾고 허겁지겁 학교로 달려간다. 그러나 악어 때문에 학교엔 이미 늦었다. 존은 선생님께 학교 오는 길에 하수구에서 나온 악어가 책가방을 무는 바람에 장갑을 던져 주었고 그제야 가방을 놓아줘서 지각을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선생님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존에게 벌을 준다.

<지각대장 존> 선생님께 혼나는 존

"이 동네 하수구엔 악어 따위는 살지 않아! 넌 나중에 학교에 남아서 '악어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또, 다시는 장갑을 잃어버리지 않겠습니다.'를 300번 써야 한다. 알겠지?

 

존은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선생님이 쓰라고 한 문장을 300번 쓴다. 그리고 다음날 존은 서둘러 학교에 가는데 이번에는 덤불에서 사자 한 마리가 나와 존의 바지를 덥석 문다.

<지각대장 존> 사자에게 바지를 물어뜯긴 존

그런데 덤불에서 사자 한 마리가 나오더니 바지를 물어뜯었습니다.

 

존은 간신히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가 사자의 관심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고 사자가 존을 두고 다른 곳으로 가자 허겁지겁 학교로 달려간다. 물론 또다시 지각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선생님은 존의 바지가 찢어진 것과 늦은 이유를 듣더니 길길이 뛰며 화를 낸다. 그리고 교실 구석에 가서 다시는 사자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과 바지를 찢지 않겠다고  400번 외치게 하는 벌을 내린다.  

<지각대장 존> 구석에 서서 벌을 받고 있는 존

존은 구석에 돌아서서 400번 외쳤습니다. "다시는 사자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바지를 찢지 않겠습니다."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는 서둘러 학교에 갔습니다.

 

다음날이 되자 존은 서둘러 학교에 간다. 그런데 이번엔 다리를 건너는 도중 갑자기 커다란 파도가 밀려와 존을 덮치게 된다. 존은 물이 빠질 때까지 난간을 잡고 매달려 있다가 물이 다 빠진 후에야 학교에 허겁지겁 달려가지만 역시 또 늦고 만다. 선생님은 존이 늦은 이유를 듣고 더욱 심하게 화를 낸다. 갇혀 봐야 정신을 차릴 거라며 교실 안에서 꼼짝 말고 '다시는 강에서 파도가 덮쳤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옷을 적시지도 않겠습니다.'라는 문장을 500번 쓰게 한다. 한 번 더 거짓말을 할 때는 회초리로 때려 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지각대장 존> 길길이 뛰며 화내는 선생님

"한 번만 더 거짓말을 하고 지각을 했다간, 이 회초리로 때려 줄 테다. 알겠냐?"

 

교실 안에 갇혀 선생님이 쓰라는 문장을 500번 쓴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자 서둘러 학교에 간다. 이번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되고 존은 제시간에 맞춰 학교에 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선생님이 고릴라한테 잡혀 천장에 매달려 있다.

<지각대장 존> 고릴라에게 붙잡힌 선생님과 그냥 가버리는 존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 난 지금 커다란 털북숭이 고릴라한테 붙들려 천장에 매달려 있다. 빨리 날 좀 내려다오."

 

그러자 존의 한마디.

 

"이 동네 천장에 커다란 털복숭이 고릴라 따위는 살지 않아요. 선생님."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권위적인고 일방적인 어른의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 

존의 이야기가 거짓인가? 혹은 진실인가?는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우선 책을 읽는 독자는 존이 악어, 사자, 파도 때문에 늦게 되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사실일 거라는 마음으로 다가가게 된다. 책을 읽는 아이들은 존의 상황을 전혀 믿지 않으려는 선생님의 태도에 마음이 답답하고 화가 난다. 게다가 선생님이 내리는 벌은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고 비인간적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때문에 거짓말이라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장갑을 잃어버린 것, 바지가 찢어진 것 그리고 옷이 물에 젖은 것은 벌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염려와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같이 잘못한 일로 묶어버린다. 아이의 작은 손으로 300번, 500번씩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쓰고, 구석에 뒤돌아 서서 같은 문장을 400번 외쳐야 할 때 느끼는 무력감과 수치심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선생님이 점점 화가 나서 얼굴이 빨개지고 길길이 뛸 때마다 존은 점점 더 작게 그려지며 아이의 자아가 작아지고 위축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일이 현재에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300번씩 같은 문장을 쓰게 하지 않았다고 해서 400번씩 같은 문장을 외치게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눈빛으로, 한숨으로, 불신으로 그와 상응하는 감정을 전달했을 수도 있다.

다시 돌아와서 존의 지각의 이유를 설명하는 사건들을 과연 진짜일까? 진짜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지각의 이유가 아무리 이해하기 힘들다고 해도 실제로 진실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지어낸 거짓일 수도 있다. 진실이었다면 나의 말을 믿어준 어른에게 평생의 고마움과 신뢰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 아이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어른이라면 어린 시절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아무리 없어도 몇 번쯤은 이미 겪어봤다. 나의 어린 시절 그 마음으로 돌아가 봐야 한다. 왜 그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를 들여야 보는 것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시작점이다. 왜 그랬어야만 했는가를 알아주고 난 다음에 다시는 그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깨달을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 줘야 하는 것이 어른의 책임일 것이다. 

평생 아이들의 편이었던 존 버닝햄은 얼마전 82세의 나이로 2019년 1월에 세상을 떠났다. 존 버닝햄은 한 인터뷰에서 "어린이들은 덜 똑똑하지 않다. 그들은 경험이 적을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값진 경험을 누가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어른들이다. 마음을 읽어주고 존중해 줄 수 있는 어른을 만난다면 그 아이도 넉넉한 마음을 가진 어른으로 자라날 것이다.

존 버닝햄은 자칫 무거워 질 수 있는 주제를 위트 있고 간결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의 그림체는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볼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들도 있고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시각이 생기기도 한다. 좋은 그림책이다.

 

제목: 지각대장 존

작가: 존 버닝햄

출판사: 비룡소

발매: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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