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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나무의 미술광장
양혜규: 서기 2000년이 오면- 국제갤러리 본문
서울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양혜규 작가의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이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블라인드 설치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는 양혜규 작가의 전시는, 2015년 삼성미술관 리움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 전시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네 번째 국내 개인전이다.
2016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지난해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독일의 권위 있는 미술상인 볼프강 한 미술상(Wolfgang Hahn Prize)을 받은 양혜규는 올해 10월 21일에 재개관하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전시에 작품 '손잡이'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굵직굵직한 전시들로 자신의 작업 세계를 활발하게 보여주고 있는 양혜규의 작품을 리움 전시 이후 4년 만에 만나볼 수 있다고 하니 설레는 마음으로 국제갤러리로 향했다.
국제갤러리는 우리가 많이 지나다니는 삼청로에 위치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지나, 옥상에 설치되어 있는 이용백 작가의 <피에타> 작품이 보이는 학고재 갤러리를 지나면 국제갤러리가 나온다. 맞은편엔 경복궁 돌담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전시는 국제갤러리 3관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현재 국제갤러리 1관은 공사 중이어서 주변이 조금 어수선한 상태였다.
전시명: ≪양혜규: 서기 2000년이 오면≫
장소: 국제갤러리 3관(서울 종로구 삼청로 54)
관람료: 무료
기간: 2019.09.03. (화) ~ 2019.11.17. (일)
시간: 월요일~토요일 10:00~18:00 / 일요일,공휴일 10:00~17:00
국제갤러리 1관은 공사중이고 2관은 전시 준비 중이다.
3관에 들어서면 바로 전시의 홍보 이미지로 공개된 <보물선>(1977년)이 보인다.
양혜규 작가가 유년시절 두 동생과 함께 그린 그림이다.
크레파스와 수채 물감으로 도깨비, 시조새 등 상상의 존재들이 유쾌하게 표현되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가수 민해경의 <서기 2000년>(1982)이란 노래로 바로 이 전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서기 2000년이 오면/ 우주로 향하는 시대/ 우리는 로케트 타고 저 별 사이로 날으리/ 그때는 전쟁도 없고 끝없이 즐거운 세상/ ···/ 서기 2000년은 모든 꿈이 이뤄지는 해···."
그러나 지금은 2019년.
서기 2000년이 되면 로켓 타고 저 별 사이로 날으리라는 그때의 기대에서 벌써 19년이나 흘렀고, 2000년은 전쟁도 없고 끝없이 즐거운 세상도 아니었으며, 모든 꿈이 이뤄지는 해도 아니었다.
미래를 향한 낭만적 희망을 담은 이 곡은 전시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관객은 노래가 가리키는 미래의 시점이 훌쩍 지나 버린 위치에서 과거의 희망을 바라본다. 즉 2000년이라는 시간성에는 과거와 미래의 시점이 동시에 녹아 있다. 따라서 지금/여기의 우리는 노래에 담긴 당시의 정서를 더듬으며 시간을 보다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다. - 국제갤러리 전시 설명
전시 설명에도 쓰여 있듯이, 작가가 유년시절에 그린 <보물선>(1977)과 가수 민해경의 노래 <서기2000년>(1982)이라는 두 개의 시청각 자료는 시간과 장소(공간)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 혹은 막연한 향수를 불러오면서도 시공간에 얽혀 있는 복합적인 감각에 대한 이 전시의 중요한 이정표라고 볼 수 있다.
솔직히 갤러리 공간의 크기를 짐작하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4년 전에 리움에서 열렸던 양혜규 개인전의 규모와 사뭇 달라 살짝 당황했다.
그러나 리움에서의 전시는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아우르는 회고전 형식의 대규모 전시였고 이번 전시는 블라인드를 소재로 작업한 <솔 르윗 동차>(2018) 2점과 공간 전면을 둘러싼 벽지 작품 '배양과 소진'(2018)을 비롯하여 방울 조각 신작 4점 등 최근 작업들로 이루어진 전시로 성격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전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벽지 작업 <배양과 소진>(2018)은 독일의 그래픽 디자이너 마누엘 래더(Manuel Raeder)와의 협업으로 양파와 마늘, 무지개와 번개, 의료 수술 로봇, 짚풀, 방울 등 각양각색의 사물이 예측 불허로 병치-배열된 작업으로 과거와 현재, 기술과 문화, 자연과 문명의 융합을 보여준다.
양혜규의 작업들을 볼 때 정말 감탄하게 되는 것은 현대적/원시적, 차가움/뜨거움, 순수자연/기계문명 등 반대적 개념을 한 공간에 너무나도 잘 풀어낸다는 점이다. 사실 현대미술, 특히 설치작업은 전시 설명을 봐도 너무 어려운 말들이 많고 그 안에 숨겨진 뜻들도 많아서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다양하고도 복잡한 관점들을 잡아냈을 때 느끼는 감각들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양혜규의 블라인드 작업 <솔 르윗 동차> 2점과 대각선 상에서 양 모서리에 설치되어 있는 방울 조각은 <소리 나는 운동>이라는 작품으로 총 4점의 신작이다.
전시장 한편에서 안개가 분사되고, 천장에 매달린 두 개의 스피커에선 새소리가 흘러나와 공간에 입체감을 더해준다. 새소리는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의 중계 영상에서 추출한 것이라고 한다.
전시장 곳곳에는 짐볼들이 놓여 있고 관람자 누구나 짐볼에 앉아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무심코 지나칠 뻔했는데 바닥을 자세히 보니 선들이 교차되어 있다.
가로 9줄, 세로 10줄의 장기판으로 바닥부터 벽으로 접혀 올려져 있다.
짐볼에 앉아 반대적 개념의 어법들이 섞여 있는 이 기묘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했다. 개인적으로는 4년 전 리움에서 열렸던 대규모 전시를 관람했던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작가의 새로운 작업을 즐길 수 있었는데, 평소에 현대미술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도 이 현장에 오면 명확하게 설명하긴 힘들어도 일상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들을 깨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설치미술의 경우 공간과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사실 처음 국제갤러리 3관에 들어섰을 때 공간이 조금 협소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짐볼에 앉아 노랫소리와 새소리, 뿜어져 나오는 안개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미지들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벽지의 이미지들, 그리고 다양한 의미들이 엇갈리고 마주치는 혼성적 어법의 설치 작업들을 보다 보면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하는지를 조금씩 알게 된다. 희한한 것은 전시장에 다녀간 이후에 그 기분이 더 되살아난다는 점이다.
유튜브에 양혜규를 검색하면 2015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렸던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 전시에 대한 큐레이터 설명과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서 올린 작품 영상이 올라와 있다. 그 영상들을 보면 양혜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조금 도움이 될 것 같다.
전시 공간이 딱 저 공간 하나라는 점이 조금 아쉽다. 평소 작가 양혜규의 작품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시간을 내서 오면 좋을 것 같고, 작가에 대해 잘 모르나 호기심이 생긴다면, 무료 전시이니 삼청동에 놀러 가는 길에 들러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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