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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석조전 2편- 석조전 2층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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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석조전 2편- 석조전 2층

그래나무 2019. 7. 14. 00:05

석조전 1층을 보고 2층으로 올라가는데 해설사 분이 난간을 마음껏 만져보라고 하신다. 이 난간은 석조전 준공 당시의 난간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겨진 것으로, 100년 내내 이곳에 있던 유물이다.

덕수궁 석조전 설립 배경과 1층이 궁금하다면 https://artsquare.tistory.com/23

 

덕수궁 석조전 1편- 석조전 1층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시청역 2번 출구 이용시간: 월요일은 덕수궁 전체가 휴무이다.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관람이 가능하다. 그러나 예약이 필수이다. 화요일/공휴일 (5회) - 심화해설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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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전 준공 당시 상태로 남겨져 있는 난간 

현재 석조전의 대한제국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는 전시품들은 일반인들의 손에 쉽게 닿을 수 있는 공간에 놓여 있기 때문에 사전예약을 한 사람들로 한정하여 해설사의 인도에 따라 볼 수 있다. 자유롭게 관람하게 되면 아무래도 전시물에 손을 대게 되고 그러면 파손이나 훼손 등의 위험으로 보존이 힘들기 때문이다.

덕수궁 석조전 난간

그런데 난간은 맘껏 만져보라 하셔서 그래도 되나 싶었는데, 황동 놋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 사용하지 않게 되면 녹이 끼기 때문에 손으로 만져주는 것이 좋다고 하신다. 당시의 사람들도 만졌을 손길을 상상하며 나도 난간을 잡고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가니 황제의 침실이 나왔다.

빨간색 번호 1번(옷장), 6번(세면대), 7번(옷장)이 석조전 준공 다시 가구로 현재 복원된 방에 전시되어 있고, 메이플사의 카탈로그를 참조하여 가구를 배치하고 침대 위에 캐노피를 설치하였다.

황제의 침실은 황제 개인의 공간이기 때문에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다행히도 영국의 메이플사에서 당시 이 방을 세밀하게 그려 놓은 카탈로그를 제작했고, 그 자료를 통해 이 방을 복원할 수 있었다.

덕수궁 석조전 황제 침실 2019년, 사진에 보이는 침대 옆 옷장이 EMPEROR'S BEDROOM 문구가 새겨진 옷장이다.

또한 옷장과 세면대에 'EMPEROR'S BEDROOM'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세개의 가구가 이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처음엔 고종을 위해 계획된 방이었으나 실제로 사용하기에 불편하다고 느낀 고종은 거부해 사용하지 않았고 함녕전에 머물렀다고 한다. 대신 1907년 유학을 빌미로 일본으로 끌려갔던 고종의 아들 영친왕이 1911년 영친왕의 어머니인 순헌황귀비가 돌아가시자 귀국하여 이 방을 임시 거처로 사용했다. 이후 영친왕은 1922년까지 귀국할 때마다 석조전을 숙소로 사용했다고 한다. 

사진에서 보이는 세면대와 거울달린 옷장이 EMPEROR'S BEDROOM이 새겨진 가구이다.

자세히 보면 침대 길이가 유독 짧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당시 우리나라 성인 남성 평균 키가 150cm 미만이었고 체구도 왜소했다고 한다. 그럼 당시 서양인들도 키가 작아서 침대 길이가 작았을까? 해설사 분이 재미있는 설명을 해 주셨다. 침대 길이가 짧은 것은 당시 서양인들의 키가 작아서가 아니라 침대 사용법이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베개가 높게 덧대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서양인들은 당시 잠을 잘 때 누워서 머리를 베는 것이 아니고 등을 살짝 기대어 잤다고 한다. 그들은 몸에 있던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 나가 다른 활동을 하다가 돌아온 것을 기억하는 게 꿈이라고 생각했고 내 몸이 일자로 있으면 나갔던 영혼이 몸으로 들어가지 못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 몸을 쭉 피지 않고 등을 기대어 잤던 것이다. 그래서 침대가 길 필요가 없었다. 이런 재밌는 얘기를 듣고 황제의 서재로 넘어갔다. 서재는 사진 자료가 남아 있어 이를 검토하여 복원하였다.

(왼) 황제 서재의 영친왕, 1911년/ (가) 황제 서재, 1918년/ (오) 황제 서재, 1922년
석조전 리플렛 2014년 사진

석조전 리플렛의 사진에서 보이는 1번 책장, 2번 게임 탁자, 3번 원탁, 5번 회전 서가 가구에는 'EMPEROR'S LIBRARY'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이 방에 배치할 수 있었다.

석조전 황제 서재, 2019년/ 사진에서 보이는 원탁과 회전서가(책꽂이)가 당시 실제 사용했던 가구이다.

이동식 회전 책꽂이가 정말 마음에 든다. 

책장이 신기하다. 책을 볼 수 없도록 가려 놨는데, 황제, 황후, 황태자가 보는 책들은 밖에서 함부로 볼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먼지나 빛으로 인한 손상을 막기 위해 커튼을 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까지 황제의 공간을 보았고, 다음으로 황후의 공간으로 넘어갔다. 고증 사진 자료가 있어 이를 검토하여 복원하였다.

덕수궁 석조전, 1922년
덕수궁 석조전, 2019년/ 왼쪽의 책장, 그 옆 책상, 중앙의 원탁이 실제 당시 사용했던 가구이다.

황후가 책을 보거나 내빈을 접대하는 방으로 계획되었다. 가구에는 'EMPRESS'S BOUDOIR'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BOUDOIR(부드와르)는 차를 마시고 뜨개질을 하는 전통적 개념의 안방, 규방과 같은 뜻으로 여성의 공간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100년 전엔 커피를 뭐라고 불렀을까? 커피를 음역하여 가비(咖啡)라고 부르거나 가배(珈琲)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 말로는? 약탕국. 약탕국이라는 이름은 그릇과 관련되어 나온 말인데, 커피잔은 당시 수입품으로 고가의 물건이었기 때문에 처음 커피를 팔 때 커피잔 대신 국사발에 담아 나갔기 때문에 약탕국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석조전 황후 거실, 2019년/ 오른쪽 장식장이 실제 당시 사용했던 가구이다.

이곳의 가구가 황제의 서재에서 봤던 가구보다 더 화려하다. 황제의 가구는 짙은 색의 마호가니 나무를 사용하였고 황후가 있는 이 공간에는 재질이 더 밝은 새틴우드를 사용하여 가구에 새겨진 그림과 장식성을 더 부각했다.

다음은 욕실 공간으로 넘어갔다. 바닥을 보면 대리석이랑 도기 타일이 같이 깔려 있다. 그런데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상하수도관이 없다. 그냥 전시용인 건가? 당시에는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고 한다. 일본이 석조전을 미술관으로 바꿀 때 벽 안쪽에 있던 상하수도관을 모두 다 철거하여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복원할 검토 자료가 존재하지 않아 지금의 모습까지만 가능했다고 한다.

덕수궁 석조전 욕실과 화장실, 2019년/ 욕실은 시중을 받아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시중하는 사람들이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도록 문이 없고 커튼이 있다.  

황후 침실이다.

덕수궁 석조전 황후 침실, 2019년/ 사진에서 보이는 침대 옆 책상과 화장대는 실제 당시에 사용했던 가구이다.

이곳은 영친왕의 어머니 순헌황귀비의 침실로 계획되었던 방이다. 그러나 준공 직후 1911년 황귀비가 별세하여 사용되지 못하였고, 대신 1920년 일본에서 영친왕과 혼인한 영친왕비가 잠시 입국했을 때 사용한 적이 있다고 한다. 황제 침실과 마찬가지로 황후 침실 또한 고증 사진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옷장과 책상 등에 'EMPRESS'S BEDROOM'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이를 바탕으로 영국 메이플사 카탈로그를 참고하여 가구를 배치하였다고 한다.

덕수궁 석조전 황후 침실, 2019년/ 사진에서 보이는 옷장과 세면대가 당시에 실제 사용했던 가구이다.

예전에는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방 안에서 세수를 했다. 서양인들은 입식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구를 놓고 도자기에 물을 받아했다면, 우리나라는 온돌이 깔려있는 방에서 좌식 생활을 했기 때문에 바닥에 두고 쓰는 그릇을 사용했다. 부유한 집은 황동으로 만든 놋 세숫대야를 사용했고, 가난한 집은 지붕 위에 심었던 박이 열리면 바가지로 만들어서 사용하였고 한다. 사진에서 보이는 세면대를 자세히 보면 물을 사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가구의 윗면은 대리석으로 마감되어 있다.

 

해설사를 따라 2층의 테라스로 나가 보았다.

석조전 테라스에서 본 정원/ 영친왕은 이곳에 서서 저 멀리 어머니의 상여가 나가는 것을 지켜봤다.

이곳은 영친왕이 어머니를 떠나보낸 마지막 장소이기도 하다. 그의 나이 겨우 15살, 1911년에 영친왕의 어머니 순헌황귀비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어머니의 장례식장에는 한 발자국도 들어가지 못했다. 순헌황귀비는 장티푸스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고종은 어린 아들이 이 병에 옮을 것을 걱정하여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대신 영친왕은 이 테라스에 서서 어머니의 상여가 궁궐을 나가는 것을 보고 들어갔다는 기록이 존재한다고 한다. 지금 바라보는 정원의 모습은 당시의 석조전 준공 당시의 모습과 다르다. 1910년 석조전 준공 당시에는 연못이 조성되지 않고 잔디와 관목으로만 정원이 꾸며졌었다. 이후 연못을 조성하고 연못에는 고종의 장수를 기원하는 거북이 조각이 만들어졌고, 오늘날의 모습은 1938년 석조전 서관(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완공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석조전 리플렛 자료

1905년에 을사조약을 맺고, 1907년에는 고종 황제가 강제로 퇴위당했다. 그리고 석조전이 완공된 해이기도 한 1910년에는 한일합병 조약으로 나라를 잃는 치욕을 겪었다. 일본에 강제로 나라를 빼앗긴 그 시절, 어머니의 죽음도 곁에서 지켜보지 못했던 영친왕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또한 아버지로서 그 모습을 지켜본 고종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1911년 석조전 2층 테라스/ 영친왕 뒤에 있는 사람들은 친일파와 일본에서 감시하기 위해 따라온 사람들이다.
석조전 테라스에서 바라본 중화전

석조전 2층의 전면 테라스에 서서 보니 왼편에는 여러 전각과 함께 중화전이 보이고, 정면에는 정원, 그리고 오른쪽에는 석조전 서관, 즉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이 보인다. 석조전 서관은 1938년에 이왕가 미술관으로 세워졌다. 1936년에 석조전을 잇대어 건물을 짓고 2년여의 공사 끝에 새로운 미술관을 완성했다. 이것이 현재의 석조전 서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다.

석조전 테라스에서 본 석조전 서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1930년대 이후, 일본은 덕수궁 전체를 '중앙 공원'으로 바꾸겠다는 1933년 중앙 공원화 정책에 따라 밖에 보이는 건물의 일부분 밀어버리고 정원이나 스케이트장을 만들었고, 이 건물 내부의 내벽을 뜯어내거나 없던 벽을 새롭게 세우며 전혀 다른 모습의 미술관으로 쓰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석조전의 원래의 모습과 기능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석조전 이오니아 양식 기둥
석조전 1층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연결되는 통로
석조전 1층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연결되는 통로
석조전
석조전 중앙홀에서 찍은 가족사진, 1918년/ 영친왕, 순종, 고종, 순헌황귀비, 덕혜옹주

1918년 석조전 중앙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이듬해인 1919년에 고종은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했다. 을사늑약(1905년)의 부당함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한 사건을 빌미로 일제는 대한제국 황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황태자 순종을 황제로 즉위하도록 했다. 순종이 머무는 창덕궁이 새로운 황궁이 되고, 태황제가 된 고종이 경운궁에 머물게 되자 순종은 고종 황제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경운궁을 덕수궁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후 1910년 석조전이 완공되는 시점에  일본에 강제 합병되는(한일합병) 국권 피탈을 겪게 된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했을 때부터 계획하여 1900년부터 시작된 석조전 공사는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된 이후 1910년에 완공되었었기 때문에 황궁 시설로서의 기능은 수행하지는 못했지만, 고종 황제가 덕수궁에 머물면서 공식 행사나 행사 후 만찬 장소로 주로 사용되었다. 강제로 황제의 자리를 퇴위당하고 순종마저 창덕궁으로 옮겨 간 후 석조전을 바라보는 고종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개항에서 대한제국에 이르는 기간 동안 고종황제는 '구본신참' 즉 옛것을 근본으로 새것을 참고한다의 이념을 바탕으로 근대적 개혁을 통하여 대한제국이 자주적 독립국임으로 밝히고 싶어 했다. 그러한 고종의 바람을 국민들도 알았을 것이다. 1919년 고종이 서거하자, 고종의 죽음을 애도하는 움직임이 확대되어 최초의 대규모 만세 운동인 3·1 운동으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석조전 내부를 아직 못 봤다면 예약도 간편하고 관람료도(덕수궁 입장권만 있다면) 무료이니 꼭 가보길 바란다. 평소에 덕수궁을 거닐며 바라보던 석조전과, 내부를 보고 난 이후의 석조전은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1편 석조전 1층을 못 보셨다면https://artsquare.tistory.com/23

 

덕수궁 석조전 1편- 석조전 1층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시청역 2번 출구 이용시간: 월요일은 덕수궁 전체가 휴무이다.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관람이 가능하다. 그러나 예약이 필수이다. 화요일/공휴일 (5회) - 심화해설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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